[스크랩] UFO 과학과 `시공간 현재`
UFO 과학과 ‘시공간 현재’ (the present time on UFO technology)’
- UFO 탐구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들 -
UFO를 과학의 한 축에서 인식하고 기술로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탐구자 스스로가 먼저 기존의 지식과 접근방식을 새롭게 조명할 부분을 찾아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해하고 또 굳게 신뢰하고 있던 지식도 어느 날 새로운 상상과 발상의 벽 앞에서 심각한 의문으로 도전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리란 것을 스스로에게 일러두어야 하고, 이미 고정돼버린 인식의 한계 너머 저편을 향해 가려면 UFO 현상을 금속, 기계, 전기, 전자 등의 기술적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도 부족하며, 우리 인류 이전의 지구 문명이나 외계와의 접촉을 시사하는 정신과학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유산과 역사, 그리고 시점(시공간 time domain)을 이해하는 우리 내면의 관습과 본능으로부터 우주적 존재로서의 지각을 회복하려는 의식 확장 노력이 필요하다. UFO 탐구자라면 자신의 탐구자적 가설이나 실수에 위축되거나 외적 부담 때문에 탐구자의 자세를 스스로 외면하지는 않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하며, UFO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위해 생각과 경험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탐구 결과를 본인 스스로가 번복, 수정하고, 개선시켜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나는 여러분과 함께 UFO 현상과 시간과의 관련에 관한 나의 주관적 인식을 나누고자 한다.
만물을 이루는 모든 물질이 그 특성을 결정하는 분자와 원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은 평범한 자연의 이치로서 우리가 이를 당연시 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질량을 갖는 물질계에서 원소의 특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우주라고 불리는 원소의 내부 원자핵과 인력으로 결합된 전자 구조체(전자를 구성하는 더 미시적인 물질의 범주는 아직 우리의 일반적 이해 대상이 아니다)로서, 이들 중 전자는 질량의 측정이 가능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 회전하며 양자론적 상태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에서 존재하고 있는 실체로 서 알려지고 있다. 전자의 수와 궤도, 회전상태와 그 회전방향 등은 거시적 물질계에서는 만져지고 볼 수 있는 응집된 물체로서 고밀도화 되어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물질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다시 반대의 경우로 극미의 관찰자(심지어 의식 자체)가 되어 어떤 고밀도 물질의 구조 속으로 계속 들어가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한계와 마주치게 된다면 아마도 원자핵을 중심으로 맹렬히 자전하며 보이지 않는 전자기 인력에 끌려 특정 궤도를 차지하며 자신의 양자론적 존재 영역에서 진동하고 있는 (확률적) 전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밝혀진 바에 의하면 전자가 존재하는 공간과 전자는 축구경기장과 축구공 정도라고 한다) 전자가 한 무리(position) 뿐인가 하고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저 멀리 또 여러 개의 전자 패턴들이 보이고 이들 모두가 상호인력에 의해 균형을 유지한 채 그들만의 고유한 패턴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며 진동하고 있음을 볼 것이다.
긴 강의 발원지도 심심산곡의 이름 모를 작은 샘터이듯 대우주를 물리적으로 결정하는 진동과 파동의 근원으로서 전자가 연출하는 극미의 세계 또한 느낄 수 없지만 실재하는 자연의 현상계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이를 작은 우주로서 인식한다. 하지만 원자 수준의 세상은 우리의 거시적 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자론적 세계라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우리를 포함한 물리적 차원의 근원인 단일한 시간 축의 흐름에 놓여 연속적 경험을 축적하는 흐름에 의해 지각이 이어지며 기억을 유지한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퇴근 전까지 사용하던 컴퓨터는 사무실 책상 위에 있으리라는 것을 연속적 경험을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의식하게 된다. (확인하고 싶으면 다시 가보면 될 것이고, 가 보았자 그 곳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그 확신에 찬 의식은 완전하게 자아에 고정되어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놓인 고정된 현재의식을 ‘결정’한다.)
하지만 원자 수준의 극미한 세계에서는 연속적 경험과 고정된 의식이 의미를 잃게 된다. 이는 보어, 슐레딩거 등 대 석학들에 의한 그 동안의 이론적, 실험적 검증 결과 ‘전자가 시야에 드러났을 때의 위치는 관찰자가 목격한 순간에 결정될 뿐 그 이외의 시간에 전자가 위치할 자리는 전자만이 결정하게 된다’는 것인데 즉, 확률적으로 특정 순간에 관찰자의 바라보고자 하는 선택적 의식이 전자의 피관측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찰자가 바라보는 순간과 전자의 운동과는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변하지 않는 기준점은 시간(단일 시간 축)이며, 가장 큰 변화 인자는 관찰자와 극소의 피측정 물질 두 실체 각각에 존재하는 파동 에너지이다.
인간 관찰자의 의식도, 전자의 존재도 우주 질서 속에서는 연속되는 파동 에너지 그 자체이다. 라디오 전파기술에서 헤테로다인 주파수 방식을 통해 공간으로 퍼져가는 전파 중에서 특정 주파수를 동조 선택하여 방송 음향을 청취할 수 있듯이 극미의 양자론적 세계에서도 고정된 단일 시간 축에 놓인 관찰자의 의식 파동은 내부에너지만으로 위치를 결정하고 있던 전자에 대해 외부 진동에너지로 작용하여 전자와 공명하는 상태를 유도함으로써 전자가 특정 위치와 궤도 공간을 점유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즉 이 현상은 의식과 물질이 위치가 결정되는 순간의 같은 시공간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에 그 곳에 있어야 할 확률이 의식으로 결정되는 극미 세계와의 만남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나타나야 할 '결과'에 '원인'이 영향을 줄 수 있는 '극적인 순수'와의 교감(unified resonance)일 수 있으며, 레이저 빛과 같이 스스로 있어야 할 파동만이 공명하며 존재하는 정돈된 시공간의 만남 일 것이다. 이 ‘교감’의 영역은 어쩌면 물질의 소멸과 창조에 관여하는 ‘의지’의 접경이자 표출경계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우리의 인식과 감성을 통해 흐르는 강물로 비유되는 시간 축은 동일한 차원의 시간이 연속되고 있는 매 순간에 동조되는 하나의 순간적 공간에서 실재하는 현재를 창조하고 있다. 물리적 존재로서의 '현재'라는 계에서 우리의 실재는 파동의 순수성으로 볼 때 자연계의 온갖 파동과 전자파와 전기에너지의 파동, 여기에 수십 억 인류 의지의 파동에너지가 정합과 부정합의 현상을 일으키며 3차원 공간에서 무수히 진동하고 있다. 거시적 계에서 양자론적 현상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없는 이유는 정합(공명) 만이 존재하는 순수성의 세계를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양자론적 현상이 동일한 시간의 축과 확률로서 결정된 순수 시공간에서 나타나는 파동적 공명현상으로 본다면, 이 현상을 지구상의 모든 이를 포함하는 동일한 시간 축을 갖는 단일 계의 상황에서 보면 파동의 대 혼동(부정합>>정합) 상태로 존재하는 계 내부에서 양자론적 현상의 출현 확률은 영(zero)에 가까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반대로 만일 최고의 순수와 집중이 가능한 절대 의식이 존재한다면 완전한 공명을 통해 의지에 동조시킨 물질의 창조가 가능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 ‘절대의식’이 깨달은 지혜가 말하는 ‘우주의식’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에서 양자론적 확률(파동 공명,시공간 일치)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공간에서 밀도를 갖는 실체(real things : multi vibration conscious group) 자체는 파동으로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좀 더 비약하면, 우주의 만물들은 각자가 우주를 대변하는 의식의 응집체이며, 고유의 파동으로 전체를 향해 교감한다.
이것은 시간 축에서 보면 실체인 모든 것이 매우 밀접한 상태로 파동적으로 서로의 의식을 발산하며 동일한 공간에 놓인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자면 시간이라는 도로 위를 현재라는 버스에 ‘실체’를 싣고 앞을 향해 달릴 때 도로 옆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는 버스(다른 시간축)가 있더라도 현재라는 버스 안의 복잡은 덜 수 없으며, 한편 옆에 다른 버스가 있거나 없거나 현재라는 버스가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상황과 같다. 파동으로 가득 찬 ‘현재’라는 버스는 서지 않고 나아가지만, 그 안에서는 언제나 현재 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시적 시공간적 입장에서 '현재'는 '찰나적 닫힌 계'이며, 계를 벗어나기 위한 외부에너지의 개입 없이 자신의 시간대를 극복할 수 있거나 이웃하는 시간으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현재의 ‘한계 미분적’ 현재, 그리고 그러한 미분적 현재에서 이어지는 다음 현재로의 도약은 비교적 다양한 ‘실체’가 지닌 완전하지 않은 의지(외부 파동 에너지)로도 극복할 수 있는 얇은 (낮은 에너지 장벽을 갖는) 시공간일 것이다. 극미의 현재가 나타나 존재하는 순간적 시공간 상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인식이 더 지배적일 것이다. 이는 차원을 결정하는 시간 축의 강력한 구속력이 그만큼 감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에너지가 결국 시공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가? 그 외부 에너지는 시공을 창조한 근원에너지와 동일한 에너지일 것이다. 나는 그 에너지의 바탕이 고 밀도의 반물질 특성을 포함하는 회전 전자기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양전자, 음전자의 분리와 결합에 따라 근원에너지의 극성이 결정되어 현상에 작용할 것이다.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1996년 1월, 베를린에서 신뢰성 있는 채널링을 통해 진행된 니콜라 테슬라와의 영적대화 중 한 물리학자의 질문에 대해 '공간을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며, 공간은 특정한 진동을 가지는데 공간을 형성하는 것은 빛과 시간의 진동'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양자론적 입장에서 지각(知覺=깨달음,내적공명)은 한 실재가 다른 실재를 만나며 그 실재를 향하게 되는 반사라는 저항을 통해서 자기 인식(의지)의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실재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시간이 공간을 결정한다는 의미는 시간이 없다면 공간도 ‘0’ 임을 의미한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이어지는 종속적 상태에서의 공간은 무한히 진행하는 시간 축의 특정 시각에 수직으로 교차하며, 거의 [Zero Time]에 수렴하는 극미분의 시간에서 미분되어 2차원 면의 형태로 상상 또는 가시화 할 수 있게 된다. 이 '정지된 것과도 같은, 공간이 극미분으로 분리된 짧은 시간 축'을 갖는 한 면에서 현재라는 공간이 결정될 수 있으며, 여기서 인간인 우리 각자의 삶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란, 시간 축의 매 순간을 경과하며 미분되어 결정되어지는 무수한 현재, 즉 '찰나적 공간'이 집적되어 의식으로 각인되는 기억의 밀도와도 같다.
이렇듯 공간 단면(시간 축을 결정하는 차원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극히 짧은 순간의 현재)이 연속되는 형태로서 매 시각마다 공간을 달리하며 진행하는 시공간의 실재에 대해 우리는 미시적 변화를 따라가는 ‘감각적 기억'을 통해 관념적 시간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지각에는 기억의 주체가 의지를 통해 경험한 다양한 파동의 영향이 자의식에 되먹임 되어 결정되는 시공간 인식의 변화가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인식이 가능한 모든 의식체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확률적으로 가장 많은 지각의 범위에서 공명에 저항하는 인식과 반사되는 의식을 통해 만물은 우주적으로 공명하며, 결정된 공간에서 거시적인 시간의 질서를 갖게(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가설로서, 양자론적 현상이 존재하는 원자 내 공간궤도에 위치한 전자의 1 진동 사이클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시 간격으로 시간의 축을 분리, 나열해 보자. 이 시간 벽(time wall)은 '현재'인 시각에 존재하는 전자의 파동이 다음(현재+1) 시공간에 놓일 전자의 파동에 동조되지 못하게 되는 상태인데, 파동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이 상태 즉 초미분의 시간으로 분리되어진 공간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는가? 만일, 우리가 그 각각의 나열된 시각들에 동조되어 드러나는 현상을 의식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아주 느리게 돌아가는 필름으로 투사되는 장면처럼 멈춘 듯이 진행될 것이다. 순간적 시공간에 현재로서 출현하는 상태(시공간 밀도에 대한 파동(에너지)의 3차원적 간섭)는 전자의 진동에 관여하는 전자기력이 최소화 된 상태로서 전자의 진동은 1 주기 이내의 한계를 갖게 되어 시공간에 간섭하는 파동의 에너지를 조성하는 원소 내부의 인력과 척력의 영향은 극히 억제되고, 인접 구성물질 원소간 상호 관계도 억제되어 순간적 현재는 정지(비구속) 상태와 다를 바 없게 됨을 우리 자신의 의식이 포함된 공간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우주적 요소들이 각각 최대한 독립되어 있는 상태임을 의미한다-원자수준의 분리(해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거시적 현재에서 에너지만으로 시공간을 미분하려면 엄청난 전자기력을 시공간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나의 가설은 그러한 과정을 제외한 채 미분상황이 존재하는 상황을 전제로 진행하고 있다. (외부 에너지인 강력한 전자기력으로 현재라는 시공이 작용하는 질서를 무너뜨린다 해도 그 영향은 전자기력이 미치는 영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주적 질서에 비해 인위적 전자기력은 극히 왜소하다.)
‘현재’의 시공간적 입장은 극미의 시간이 작용하는 정지(standing=파동에 동조된)되는 공간이며, 시간에 존재하는 3차원 징검다리 상태로서 미시적 현재에서는 부정합, 비순수적 공간에 놓인 거시적 현재에 비해 매우 적은 에너지(심지어 순수의지 수준)로도 시간에 평행하게 존재하는 인접한 시공간으로 전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약해진 구성 원소간의 인력을 벗어날 수 있는 만큼의 전자기적 에너지에 의해서 동일한 공간에서 불연속적 전이인 트랜스포테이션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적 의미로는 거시적 현재에 비해 미시적 현재에서는 생명체 의식이 보다 순수하고 정밀하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인식과 의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것이다.
극미의 절제된 공간에서 우리의 의식은 진행하는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주게 될까? 분명한 것은 공간이 미분화 될수록 이 의식 에너지는 순수하고 높은 주파수의 진동에너지로 존재하기 쉬우며(반드시 높아야만 할지도 모른다-수 백GHz 수준), 진동의 수준만큼 정밀하게 작용할 것이란 점이다.
지금은 어떤지 확인할 수 없으나 과거로부터 전해진 바에 의하면 옛 티벳의 수도승들은 득도의 검증 수단으로 화강암 성벽을 통과하는 초현상을 택한 수도승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도의 수련을 통해 성벽을 통과하다 순간의 실수로 그대로 성벽 내부에 갇혀 성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도 있다고 문헌은 전하고 있다. 이 시도가 사실이고 성공하였다면 동일한 시간 축에서 이와 같은 비물질화의 사례는 시간의 변화에 따르는 공간 물질인 수도승 자신에 내재된 다양한 진동에너지(존재상태)를 고도의 정신의식(파동에너지 공명)을 통해 미시적 공간을 전이할 수 있는 순수하고 높은 파동에너지 상태로 상승 조절함으로써 동일한 계(界)에서 거시 세계의 물질 구조를 투과 할 수 있는 (물질의 고유진동수 보다 상승된) 순수 파동에너지체로 변환하여 물질의 에테르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UFO에 관심 있는 탐구자라면 1948년 필라델피아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이 실험은 적에게 발각되지 않는 무기 시스템의 개발, 즉 투명 전함의 개발이 목표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을 실험하기 위한 근거를 제공한 것은 아인슈타인과 니콜라 테슬라의 기술에 의한 매우 강한 전자기 에너지 장이었다. 바다 가운데서 실행된 실험의 결과는 배가 파란 빛에 둘러싸여 사라졌고, 근처 항구에 나타났으며, 실험장소로 다시 돌아온 후 끔찍한 상황이 배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 나는 이 사건에서 마치 쇠와 인간이 혼합된 듯이 배를 구성하고 있던 쇠붙이의 일부가 되어 버린 군인들의 참상을 특별히 지적하고자 한다.
위 실험에서 거시적 현상에만 착안했던 과학자들은 고에너지 전자기장이 빛과 시간에 영향을 끼치며, 또한 만들어낸 고도의 전자기적 공진에너지로 인해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계 각각의 고유진동수 파동이 사고 순간 공진된 전자기 파동의 지배를 당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였다. 물질은 자신들의 고유진동수를 지배하는 고도의 충만된 공진에너지에 의해 재결합되었던 것이다. 마치 흔들어도 섞이지 않던 물과 기름이 초음파 에너지에 의해서는 자연스럽게 섞여버리듯이.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전자기에너지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극미의 시간과 공간 장에서 '기술적으로 포획되어진 공간에서의 불연속적 전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 견해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국내에서 1989년 3월 대한초능력학회를 통해 보고된 '초공간 전이시험 성공' 사례에 대해 보다 많은 분들이 다각적 시도로 이해에 접근 해 볼 수 있기를 권한다.
나는 기존의 지식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입장에서 '지각될 수 있는 현재'에 대하여 UFO 탐구자들이 ‘현재’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의 미시적 시공간과 그 이웃하는 시공간과의 경계에서 발현되거나 응용될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도가 있기를 바라며, 이와 함께 '현재'라는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찰과 이해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주 에너지에 의해 창조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인간과 UFO에 의한 인위적 에너지 작용을 허용하고 있는 ‘존재의 차원인 현재’는 언젠가 이 ‘이해할 수 없는 가설’에 접근하는 소수의 의식들에 의해 재검토되고 보완되어 UFO 테크놀로지의 일부로서 보다 명료해질 수 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21세기를 전후로 이 희망은 이미 우리의 상상속 직관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영화 ‘스타트랙’에서 승무원이 원형 투사대에 올라선 후 사라지면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트랜스포테이션 장면이 바로 -명백한- ‘현재’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UFO 테크놀로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지식의 토대를 기존의 연구방식에서 더 나아가 초의지(고도의 의식)와 깊은 순수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의식이 확장된 영역으로 옮겨 놓아야 할 것이다. 나는 UFO 기술의 도서관이 다차원을 이루는 우주의식에 스스로 투영되어 있다는 사고를 신뢰한다. UFO 테크놀로지는 ‘의지’라는 비물질도 시간과 공간에 작용하는 진동에너지로서 과학적 제어대상으로 수용할 것이며, 이는 부정과 이기적 욕망이 소멸된 평화적 공영의 열망과 극도의 순수로 공명하는 우주적 일체의식 안에서 차원을 넘어선 직관으로 흘러드는 이해를 따라 물질문명과 융합되는 데 필요한 과학적 단서와 증거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다.
얽혀 돌아가는 현실을 떠나 인식하는 내 사색의 현재란 '진동하는 에너지로 충만한 시공간에서 극소로 미분되는 시간 축에 직교하며 동일 차원, 다중 파동으로 존재하는 상태들의 불연속적인 전이 상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