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발적 복종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1548
16세기 혁명적 지식인 라 보에티의 자유와 독재에 관한 고찰을 담은 저서 『자발적 복종』의 번역 연구서.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 외에 그와 그의 문헌에 관한 호르스트 귄터, 하인츠 요아힘 하이도른의 연구 논문을 수록하였다. 이 책의 원저 『자발적 복종』은 절친한 친구였던 몽테뉴의 저서 『에세』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던 것으로 모든 계급에 대해 부정하고 형제애로 결속된 아나키즘을 지향하여, 근대 계몽주의자 및 혁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1. 열여덟의 나이에 글을 쓰다. 세상을 놀라게 하다.
-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자발적 복종]을 쓴다. 이 글은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대한 평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란 설도 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이 글은 구교에 저항하던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의 지침이 되고, 또한 라 보에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실천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정립한 근대적 이념은 이후로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
2. 친구 몽테뉴가 그의 글을 부정하다.
-
라 보에티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몽테뉴의 친구이다. 두 사람은 우정의 모범이 될 만한 관계를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는 서른셋의 나이에 요절한 친구의 글 [자발적 복종]을 두 번씩이나 부정한다. 한번은 이 글을 위그노 교도들이 자의적으로 왜곡해 버렸다고 하고, 또 한번은 그의 친구인 라 보에티가 열여섯의 나이에 아무런 의식 없이 습작으로 쓴 글이라며 폄하한다. 하지만 이는 라 보에티의 글이 몽테뉴 같은 친구도 부정할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
3. 왜 복종하는가
-
라 보에티의 논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라 보에티의 권력관은 인민이 군주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고 볼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인민이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모든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한다.
-
4. 인간의 본성으로서 자유와 평등
-
라 보에티는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는데, 그것은 자유라고 말한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도처에 악이 창궐하게 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 어떤 맛과 흥미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라 보에티는 자연에는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이 한 가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평등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자연이 재능을 부여함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강한 자와 영리한 자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이처럼 라 보에티는 자유와 평등을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으로 보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발현된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키려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열망하기 때문이고, 또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
5. 자발적 복종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
라 보에티는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역으로 군주가 이러한 본성을 억압함으로써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라 보에티가 보기에, 군주는 교육과 습관 그리고 유희를 통해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지속시킨다: 라 보에티가 스파르타의 리쿠르구스의 예를 들어 설명하듯이,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개들도 자라난 환경과 교육에 따라 달리 행동한다. 그리고 무력으로 리디아를 점령한 키로스가 폭력이 아니라 사창가와 술집, 그리고 도박장으로 그 국민들을 예속시켰듯이 이러한 유희들을 통해 권력자는 인민들을 노예의 상태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권력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다수와 자신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소수와 이러한 교육, 습관, 유희 등을 통해 모순된 상태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
6. 자발적 복종의 자각
-
인민이 군주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혁명인가? 폭력으로 군주를 없애는 것인가? 독재자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고 해서 로마에서 독재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고, 혁명을 거친다 해서 이러한 억압과 착취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의 자발적 복종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성인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과 노력 없이는 우상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복종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울력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1500년대 사람이다
몽테뉴와도 친분이 있었고...
이 책은 그의 나이 18살 때 쓴 책이라고 한다...음....
18살 때 이런 책을? 이라며 신기하다가도 신기하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읽어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이 쓰여 있기에...
다만 어쩜 그렇게 우리는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아가는가 하는게 놀라울 뿐이다...
우리가 아니라...나만?
이 책을 만약 처음으로 읽었다면 신선하고 강한 충격을 받았을텐데....
이미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에리히 프롬의 <불복종에 관하여> 그리고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읽어서 아주 강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지만...그래도 재미있게 읽었고 그간 풀려있던 생각이 좀 조여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이 책에서도 저자가 강조하듯이...우리는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천부적인 기질도 계속 가꾸지 않으면 순식간 썩어버린다고 하니까...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은 이 책이 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지만...글은 명쾌하다~ 쉬운 글이다...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계신 나와 같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깨우침을 주려고 쓴 책이니 그럴수밖에~
책의 분량도 100페이지도 안된다...짧고 깔끔~ 나머지 반은 그에 대한 설명들...그 부분은 안 읽었다...
이렇게 멋진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다가 30대 초반에 죽음에 이렀다...안타깝다....
33살에 죽었구나...내 나이에...그래도 그의 삶은 짧게 느껴지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하루 하루 제대로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다면...나의 별 볼일 없는 의식이 잠자는 일주일이 그의 하루보다도
못할지도 모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자유란 대체 뭘까...뭐가 자유일까...하는 생각...
뭘 어느만큼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자유일까...? 과연 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필요가 있는가?
독재자의 아래에 살면서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그나마 있던 자유도 포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무슨 소리냐면...그냥 조용히 살면 일단 지금 누리는 노예 상태에서의 작은 자유는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자유가 없음을 못 느끼기도 하지만 알아도 요 상태에서 머무르는 게 아닐까 하는...
누군가가 자주 하는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따뜻한 난로 옆에서 쭈그리고 있다가 불에 타 죽는다는?ㅎㅎ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자유마저 저당잡힌 채 일종의 도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정말 극단적인 경우
감옥에도 갇히고...그러면서도 자유를 추구한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지만...나는 아무리 배우고 생각하고 살아도
그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듯...베네치아 사람들처럼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은 타고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자유란 단지 몸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테지만...몸은 갇혀있어도 내 정신은 자유롭다~
이겠지만...
하여튼 나에게는 자유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동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린다....ㅡㅡ;;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꼬박꼬박 투표하는 일?
이 책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이 대목....
인민에 의해 선출된 폭군은 앞의 유형보다는 더 낫게 행동할지 모른다
실제로 사람들은 선한 왕을 기대하면서 누군가에게 국가를 위임한다(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저자는 누군가를 뽑아 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행위 자체도 이해 못할 행동...
그렇기도 하다...생각해보니 그렇군...하는 생각...생각해보면 공공기관은 필요할 수 있지만 반드시 대표?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결정이야 회의를 통해 생각을 모으면 되고...물론 이 경우에도 대표는 필요하구나
그러나 극단적인 권한을 가진 대표가 반드시 존재할 필요는....권한은 최대한 잘게 쪼개서 부여하면 될 일...
자신이 해당되는 분야에서만 대표 권한을....
좋은 책이다
읽으면서 저자가 어리석다고 설명해대는 그 모습들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좀 부끄러워진다는 단점만 빼면....
읽어볼만한 멋진 책이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 기이하지 않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은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강한 권력에 의해서 강요당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인민들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자의 명성에 홀리거나 그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만약 두세 명의 사람들이 독재자의 모든 폭력 행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기이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있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유일한 한 사람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저항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겁합이 아니라 굴욕이고 부끄러움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그저 자유를 그저 열망하기만 하였으며 단순히 그러한 의지만 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자유란 오로지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가?
가령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자유를 상실할 경우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숨마저 바칠 정도로 자유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독재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너희들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를 창으로 찌를 필요도 없고 뒤엎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를 지지하지 않으면 족하다
그러면 너희는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토대가 사라지면 독재자는 마치 제 무게에 못 이겨 저절로 붕괴되어 산산조각 나는
거대한 입상처럼 무너지고 말리라는 것을
인민에 의해 선출된 폭군은 앞의 유형보다는 더 낫게 행동할지 모른다
실제로 사람들은 선한 왕을 기대하면서 누군가에게 국가를 위임한다(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왕위를 계승한 자는 인민을 마치 타고난 노예처럼 취급한다
선출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된 자는 마치 사나운 수소를 길들이듯이 그렇게 자신의 신하를 부려먹는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인민은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자유를 너무나 뜻밖에 갑작스럽게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뇌리에는 자유를
되찾으려는 생각이 미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의 내적 성향은 무엇보다도 노예화로의 유혹이라는 습관에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천부적 기질은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가지 않을 때에는 순식간에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발전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바르게 교육받지 않으면 얼마든지 나쁘게 변형될 수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을 보라
소수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끔찍한 악한들로 하여금 권력을 쥐지 못하게 노력한 바 있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교육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유를 수호하는 일을 하나의 명예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요람에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고 자유롭게 성장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의 가장 적은 부분이라도 세상의 어느 다른 행복과 교환하려 하지 않는다
책과 학문은 개개인에게 무엇보다도 자아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독재자를 증오하게 만든다
위대한 술탄은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위대한 술탄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학자들이 살지 않았다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용기 또한 상실한다
노예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는 투쟁 욕구도 없고 강인함도 없다
일반 사람들은 완전히 경직되어 있으며 자유의 불길은 그들의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
고대의 독재자들은 백성들이 노예의 멍에 아래 자신의 의식을 잃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한 술책과 마취제를 사용
하였다 우둔하게 된 인민은 이러한 놀음을 심심풀이로 즐긴다 인민은 덧없이 사라지는 공허한 오락에 현혹된다
그들은 말하자면 알록달록한 그림책에 끌려 글 읽기를 배우는 아이들보다 더 끔찍하게 이용당한다
인민은 정말로 어리석고도 비참한 결과로서 노예 상태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로마의 독재자는 약간 달리 행동했다
그들은 10년 집권을 축하하는 파티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오로지 배불리 먹는 일에 혈안이 된 천민들을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다
천민들 가운데 영리한 자가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수프 그릇을 내팽개치면서 대신에 플라톤이 묘사한 이른바
공화국의 자유를 선택했을 것이다
독재자들은 조세로 비축한 곡식들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
포도주와 돈 가운데 6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만을 인민에게 나누어 주며 마치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리석은 바보들은 원래 자신에게 속했던 재화 가운데 불과 일부만을 돌려받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그저 왕의
호의로 착각했던 것이다
설령 그들이 재판에 회부되고 형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재판을 거부할 수
있고 틀림없이 선임자인 상급 신하의 비호를 받게 될 것이다
배우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자
위를 향하여 응시하자
우리의 명예를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선을 위하여
우리의 행동을 깨닫고 우리의 오류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신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신은 저 아래의 전제 군주와 그 패거리들에게 어떤 특별한 형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면 신은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선량한 자와 신의 은총을 받는 자라면 누구든지 폭정을 가장 저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