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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사가 반복되거나 역행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한참사랑 2009. 1. 5. 11:49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231161102§ion=03

 

 

역사가 반복되거나 역행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안윤홍균 독서인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사실들과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의 총체인 ‘역사’가 되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사회, 국가, 문명에서든지 어떤 사실이나 사건들의 양태(pattern)가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것을 적잖이 관찰하게 되기에 그러한 말이 나온 걸로 안다. 그리고, 좋은 역사가 아니라 나쁜 역사가 되풀이되는 까닭은, 그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과거 사실이나 사건에서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고 올바로 깨우치지 못 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와 나라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고 겪으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진저리치고 개탄하며 절실히 느끼고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리라 생각한다.


한편, ‘역사’는 과거 사실(史實)들에 대한 기록인 ‘사료’와 ‘서술된 역사’를 뜻하기도 한다. 이 경우 ‘역사’에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 포함된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에도 당연히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으려니와, 후대의 역사 서술에는 필연적으로 연구자와 서술자들의 주관, 곧 역사 철학과 사관(史觀)이 바탕에 깔린 해석이 담겨 있을 수밖엔 없다. 그리고, 그 해석은 영국의 역사가 카(E.H. Carr)가 말한 바대로‘과거와 현재의 대화’의 결과로 이끌어내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철학이 전공인 김현식 교수(한양대 사학과)에 따르면, 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가의 신념과 의식에 따라 사실의 해석이 좌우된다’는 점이며, 또한 그 명제에는 역사가가 ‘사실들을 짓밟으면서 오만한 해석을 내리는 사례들’을 제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아울러 그는 역사는 단지‘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와 현재의 반대 심문’이라고도 말한다.


나는 최근에 벌어진 우리 역사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 곧 “이른바”‘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논쟁,‘건국절’ 논란,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 ‘건국 60년’책자 배포, 과거사 청산 관련 위원회 통폐합 논쟁 등을 지켜 보면서, 김교수의 지적과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엇던, 그러나 결코 아주 잊어 버릴 수는 없었던 과거의 불행한 사실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기에 이 지면을 통해서 알리고자 한다.


첫 번째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76년 12월에 간행한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12권(1935년 1월~1937년 12월분)의 편찬, 출판과 관련된 사실이다. 이 책은 <국사편찬위원회사>(1990년간)에 따르면, “일제의 잔학한 식민통치의 갖가지 양상과 이에 따른 민족의 수난은 물론 이에 항쟁하는 민족정신의 발로를 충실하게 서술함으로써 일제하 시대상황을 부각시켰다. 한편, 국내외 일제의 학정과 민족운동에 관련된 사료를 수집하여 수록함으로써 한민족 독립운동의 새로운 인식을 촉진케 하였다.”(214-215쪽)라고 하는 일종의 사료집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1930년대에 항일 독립 활동의 일환으로서 일제의 탄 압 대상이었던 ‘독서회’사건에 대한 당시  신문 기사들이 모두 빠져 있다. 원고에는 상당한 분량이 포함되어 조판까지 되었으나 최종 교정 과정에서 모두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당시에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대’ 말기로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검열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를 의식한 내부 자체 검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1982년 6월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책임을 맡아 <한국현대사>라는 책을 편찬, 탐구당에서 출판한 일이다. 당시 청와대의 지시(?)로 문교부 장관의 결재를 받아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교육연구사가 간사가 되어 만들어진 이 책은 한마디로 최근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와 비슷한 성격의 책이다. 곧 당시 전두환 정권의 집권 세력이, 요즈음 대통령과 여당 및 ‘뉴라이트’계열 인사들과 같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문제 의식(?)과 목적을 갖고 만들어 낸 책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국사 교과서 편찬을 맡고 있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이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 교양서’로서 편찬, 출판된 것인데, 그 집필진과 주요 내용을 보면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 대동소이한 역사 의식과 목적을 갖고 서술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현재도 시판중임.)

 

이처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되새겨 보면서 나는,‘선비’및 ‘사관(史官)’과 ‘언관(言官)’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본래 군사 쿠데타로 시작한 집권 과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나라가 조선이었지만, 그래도 세계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긴 세월 동안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사림(士林)’으로 대표되는 당시 지식인들의 올곧은 비판 정신과 개혁 의식,  당시의 역사 편찬,기록자들과 언론 담당자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 의식에 크게 힘입었음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부패하여 제 구실을 못 하였을 때, 나라가 위난에 처하고 마침내는 망국에 이르렀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로부터 말,글과 함께 국민 통합과 정체성 확립의 가장 중요한 벼리라 할 수 있는 ‘역사’를 왜곡하여 서술, 출판하고 더 나아가 그 같은 내용을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에게 ‘특강’하러 다니는 일부 학자며 교수며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부추기고 응원하면서 이를 ‘불편부당(不偏不黨)’한‘정론(正論)’이라 부르대는 일부 언론사와 그 종사자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와 나라를 온통 갈등과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마치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라는 ‘외환(外患)’으로 인해 가뜩이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이 때에 크나큰 ‘내우(內憂)’한 가지를 더 우리 국민에게 덤터기씌우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어 이룩한 민주화와 남북 화해의 성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와 나라를 다시금 반민주, 반민족, 반민중의 암흑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 나는  겁 없이 ‘역사’를 서술, 출판하고 부르대는, 그러면서도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들이, 과연 뒷날 역사 앞에서 무슨 변명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때로는 그 흐름이 언뜻 되풀이되거나 뒷걸음질치거나 심지어 거꾸로 흐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일지라도 그 뒤에 치러야 할 대가와 후유증이 너무나 크기에 그것을 그대로 용인하거나 방치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촛불’은 계속 밝혀야 하리라 믿는다.


                          2008. 12. 25. 02:00까지 초고를 쓰고,

                                  12. 25. 13:22까지 고치고 더하다.

                                  12. 25. 오후 01:22에 다시 고침.

                                  12. 25. 오후 05:51에 다시 고치고 더함.

                                  12. 31. 오후 인터넷 대안 언론인 <프레시안>에 기고,

                                                    07;04 사회면에 칼럼으로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