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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슬로 라이프-쓰지 신이치

한참사랑 2008. 12. 17. 00:54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슬로 라이프'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고 한다. 쓰지 신이치는 <슬로우 이즈 뷰티플>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속아서는 안된다. 매스컴이나 대기업이 말하는 '슬로 라이프' 를 떠받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다 . 그리고 미국형 '여유로운 전원 생활과 주말의 아웃 도어 라이프'를 지탱해 가는 것은 최근 떠들썩한 부시 주니어의 '향후 20년간, 쉬지 않고 발전소를 짓겠다'라는 계획이다"

 

'슬로'에는 본래 '친환경'이라든가 '지속 가능한'이라든가 '글로벌에 맞서는 로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것이 슬로 라이프를 표방하는 잡기 등에 실리게 되면 대부분 간과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 기업은 슬로 라이프 실현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물건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서만 열을 올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느림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어야 할 '뺄셈'의 발상은 빠져 있고, 덧셈만 잔뜩 들어가 있는  셈이다.

 슬로 라이프가 영어에서는 낯선 표현이지만, '심플 라이프'는 영어권에서도 익숙한 표현으로 실제 북미 쪽에서는 최근 들어 '심플'이라는 컨셉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물질적 풍요만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근대 문명의 양태에 질린 '문화 창조자'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덧셈이 아닌 뺄셈의 발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슬로'와 '심플'은 현 시재의 심리와 방향을 나타내는 비슷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소박하고 느긋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자연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의 구상과 창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뺄셈을 시작하여 서서히 줄여가는 길밖에는 없다.

 

 슬로 라이프란 온난화를 중지시키기 위해 우리의 산업과 삶의 방식을 '슬로다운'시키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슬로 라이프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가스 배출 속도가 그것을 동화.흡수하는 지구의 느긋한 속도보다 빨라서 생긴 이상 현상이다. 즉 인간은 경제 시간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탄소 순화이라는 생태계 기반에 구멍을 내어 버린 것이다. 기후 변동의 영향은 다양하며 우리는 이제 겨우 그 두려운 전체 모습 가운제 극히 일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연재해의 증가, 열대성 전염병의 확산, 사막화의 진행 등도 온난화의 결과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영국의 최대 보험 그룹인 CGMU에 따르면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 피해액은 매년 10퍼센트씩 중가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로 피해가 계속 증가하게 되면, 2065년에는 예상 피해액이 세계 총생산을 상회하게 된다.

 또한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빙하가 녹는 것이다. 월드위치연구소에 따르면, 과거 35년 동안 북극해를 뒤덮은 얼음이 42퍼센트나 얇아졌다. 그린란드를 덮은 얼음도 이미 녹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온난화의 진행으로 전부 녹아 버리게 되면 해면이 약 7미터 정도 상승하고, 전 세계 연안 도시와 아시아의 주요 농경지인 하천의 범람원이 수몰돼 버린다고 한다. 또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생물도 이대로 가면, 이번 세기 안에 현재 서식 중인 생물의 절반에서 3분의 2가량이 멸종한다고 한다.

 멸종 자체는 생물 진화에 늘 동반되는 것이므로, 그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난 40억 년의 생물 진화사에 등장한 모든 종 가운데 99.9999퍼센트는 이미 멸종했다고 여겨지며, 현재 진행 중인 대량 멸종 이전에 적어도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의 대량 멸종이 이전과 다른 점은, 그것이 하나의 종에 불과한 인간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시간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진화라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느린 과정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3천만 종으로 추정되는 지구에 사는 다양한 종의 생물들은 40억 년에 걸펴 서서히 만들어져 온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 낸 이 융성한 문화는 모두 이 위대한 선물 덕분이다. 그것들을 지금 우리들은 눈 뜨고 잃어버리려 한다.

 '느림'이라는 화두는 바로 이러한 어두운 전망 속에서 태어난 작은 희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딥 에콜로지'deep ecology는 노르웨이의 철학자 아르네 네스가 자신의 환경 철학에 붙인 이름으로, 1970년대 이후 환경운동과 생태학 연구에 종사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깊은'deep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깊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근대 정신을 관통하던 인간 중심 사상을 뛰어넘는 것을 중심 테마로 삼고 있다.

 이를 시간의 관점에서 말해 본다면, 인간 중심적 시간을 자연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자연의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딥 에콜로지는 '슬로 에콜로지'의 다른 이름이다.

 딥 에콜로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인류는 특별하지도 않고 유달리 빼어난 종도 아니며, 다양한 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우리는 자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같이 자연계에 대해 특별 대우만을 요구해 온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지구에게 지워 온 막대한 부담을 조금씩이라도 줄여 나가야 한다. 어떤 생물이든 이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들이 서로 얽히고 서로 의지함으로써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인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자신도 그와 같은 생태계 가족의 일원이라는 관점에 서게 되면, 세계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에서 토양 속의 생명체를 전멸시킨다든가 돈이 되는 작물만을 키우기 위해 숲을 남벌한다든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었던 과학기술에 대한 생각을 통째로 재정립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딥 에콜로지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어느 종이든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소는 인간에게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소의 가치를 단순히 그 역할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 모든 자연의 요소들은 본래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살아가기 위한 자기 조직화의 능력 자체가 바로 그들의 가치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에게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만으로 다른 종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려고 든다. 사람들에게는 '필요, 불필요'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종이 아니라면, 그것은 멸종시켜도 괜찮다는 생각조차 서슴지 않는 다. 하지만 어떤 종을 멸종의 위기로 내모는 일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또한 이런 '필요,불필요'의사고방식은 더 나아가 '생명 조작'의 사고까지 이끌어내게 된다.

 이에 대해 딥 에콜로지는, 세계란 그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부분화나 세분화는 당치 않은 일이라고 본다. 사람 또한 그 전체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다. 사람과 다른 종-그것이 식물이든 토양이든 소이든 양이든지 간에-사이에는 유대 관계가 있고,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어 있다.이러한 생각을 전통적인 인도 철학에서는 '나는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표현한다. 타자를 포함한 자신, 타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인 자신, 이것이 바로 느리고도 깊은 생태학에서 '나'인 셈이다.

출처 : 문학 사랑
글쓴이 : 잠자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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