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시작(詩作)이란
내게 다만
고질인 만연체의 글을
짧고 간결하게 써보는
연습일른지도 모른다
산문으로 옮기기엔 어쩐지
쑥스럽고 부끄러운 감상을
그냥 내버리거나
묻어두기에는 아까워
낙서하듯 끼적거린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름대로는 심오한 사상을
되도록 함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애써보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아주 오랫동안
겉보기로나마 시란 이름으로
꽤 많은 글줄들을 적어 왔고
또 앞으로도 써 나갈 거다
비록 여느 시인들 같은 글재주는
없지만 그건
별달리 사는 재미도
기뻐할 것도
즐거울 일도 없고
그저 외롭고 슬프고 쓸쓸할 뿐인
지금까지 내게
거의 유일한
도락이며
호사이고
위안이기에
평생동안 글 읽고
거의 반평생을 글쓰며
책 만드는 일로 살아온
내게 남은
마지막 보람이므로
무엇보다도 40년 간이나
나를 괴롭혀 온 고질병에
그나마 효과 있는
치유책이니
남들이 초라한 허영이며
사치라 비웃을지라도
끝내 책 한 권으로
엮어 펴내지는 못 할지라도
아니 하물며 읽어 주는 누구
한 사람조차 없을지라도
그냥 이대로 시답지 않은
시들이나마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써 나가련다
2008. 11. 21.
초겨울 낮부터 밤까지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거퍼 들으면서 쓰다.
2018. 8. 23. 낮에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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