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시(序詩)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그 외진 길
이제는 인적(人跡)조차 끊어진
내 아는 이 누구도 가려 하지 않아
나 혼자뿐이라서
홀로 가는 길
영원과 사랑
그리고 진리와 진실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기다리는
고독한 운명의 길로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보랏빛 노을이 번지는
잿빛 어둠이 깔리는
황혼의 숲 속 길을 가면서
아직도 처방이 없는
세기말의 시대병(時代病)과
세계고(世界苦)를 앓느라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쿨럭쿨럭 잦은 기침으로 달래보리라
괴로우나 복된 사랑의 짐을
한껏 등에 지고서
무거운 두 다리를 힘겹게 옮겨
고달픈 삶의 자취를 남겨도
묵묵히 앞만을 바라보리라
세기의 정오(正午)에 떠나 피곤한 몸이
의지할 지팡이 하나 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쉴 겨를도 쉴 자리도 찾지 못해도
나는 가야만 하겠구나
쓰러질 때 쓰러지고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나는 기어코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가야만 하겠구나
오직 하나
등대처럼 빛나는 저 별을
안내자로 삼고
저 산 너머를 향한
가슴이 타는 듯한
동경과 소망만으로
뼈저리게 기도하면서
힘들고 외로운 구도(求道)의 순례길을
새벽처럼 밝아올
그날만을 바라고
한사코 나는 가야만 하겠구나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 1973. 6. 5. 서울 냉천동. )
'시가 꽃피는 뜰(자작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허의 유적지에서 (0) | 2006.07.31 |
---|---|
껍질의 꿈 (0) | 2006.07.31 |
살기 어려운 인생, 쉽게 쓰는 시 (0) | 2006.07.31 |
나는 아직도 사랑을 (0) | 2006.07.31 |
찻집에서 2 (0) | 2006.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