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꽃피는 뜰(자작시 모음)

서시

한참사랑 2006. 7. 31. 02:47
 

서 시(序詩)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그 외진 길

이제는 인적(人跡)조차 끊어진

내 아는 이 누구도 가려 하지 않아

나 혼자뿐이라서

홀로 가는 길

영원과 사랑

그리고 진리와 진실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기다리는

고독한 운명의 길로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보랏빛 노을이 번지는

잿빛 어둠이 깔리는

황혼의 숲 속 길을 가면서

아직도 처방이 없는

세기말의 시대병(時代病)과

세계고(世界苦)를 앓느라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쿨럭쿨럭 잦은 기침으로 달래보리라

괴로우나 복된 사랑의 짐을

한껏 등에 지고서

무거운 두 다리를 힘겹게 옮겨

고달픈 삶의 자취를 남겨도

묵묵히 앞만을 바라보리라


세기의 정오(正午)에 떠나 피곤한 몸이

의지할 지팡이 하나 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쉴 겨를도 쉴 자리도 찾지 못해도

나는 가야만 하겠구나

쓰러질 때 쓰러지고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나는 기어코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가야만 하겠구나


오직 하나

등대처럼 빛나는 저 별을

안내자로 삼고

저 산 너머를 향한

가슴이 타는 듯한

동경과 소망만으로

뼈저리게 기도하면서

힘들고 외로운 구도(求道)의 순례길을

새벽처럼 밝아올

그날만을 바라고

한사코 나는 가야만 하겠구나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구나


                       ( 1973. 6. 5. 서울 냉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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