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 강신표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 상례(喪禮)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잊고 산다. 그러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에 접하게 되면 새삼스럽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은 특히 전통적 의례인 상례에서 그대로 만나보게 된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가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다 함께 생각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죽음을 맞은 사람이 가족의 일원일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서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 사이였다면 한 집안의 큰일로 여긴다. 옛날 농촌사회에서는 농사일에 공동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며 살았다. 동네사람 모두가 한 집안 친척처럼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기 때문에 어느 집안에 일어난 초상도 동네 전체의 초상으로 여겼다. 상을 당한 가족을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한 모든 일을 일가친척과 이웃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다. 모든 것을 함께 해온 농촌사회에서는 동네 청장년들이 위친계라는 계(契)조직을 일찍부터 만들어 이끌어 왔다. 집안의 어른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초상을 위해 미리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병자에게 죽음이 임박해 오면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그 죽음을 지켜본다. 유교전통에서는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지막 이승의 작별을 지켜보지 않으면 가장 큰 불효(不孝)로 여겼다.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마지막 유언을 듣는 기회이기도 하다. 병자가 숨을 거두고 운명을 하면 젊은이가 곧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고 지붕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며 ‘아무개 복’(復)하고 세 번 부른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북쪽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해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대문밖에는 사자(使者)상이 차려진다. ‘저승에서 죽은 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오는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음식상’이다. 죽은 자의 혼을 부르는 ‘복’(復)이라든가, 사자 상을 차리는 ‘사자 밥’ 풍습은 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속신앙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모가 돌아갔을 때 장자는 상주가 되나 슬픔에 젖어 있기 때문에 상례의 총 지휘는 호상(護喪)이 맡게 된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관련된 업무를 분담시키며 처리한다. 부고를 내고 평소에 사귀던 사람들에게 알리는 등 장례 절차를 치르는데 일련의 일을 호상이 지휘, 처리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가정의례준칙으로 부고를 돌리지 못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사람의 죽음은,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바람처럼 빨리 전해지기 마련이다. 옛날 촌락사회에서 마을 전체가 초상에 참여하듯이, 부음을 들으면 곧 문상을 가는 것이 우리의 예의인 것이다. 상주를 위로하고, 죽은 이에 대한 조의를 표시하고, 부의금을 내고 서로의 친분관계를 다시 한번 다지는 것이다. 옛부터 초상이 나면, 초상이 난 집에서는 지인 들이 모여 밤샘을 한다. 주로 젊은이들이 중심으로 망자(亡者: 죽은 자)가 있는 곳을 밤새도록 함께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주와 그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며, 외롭게 홀로 두지 않으려는 애틋한 풍습이 아직도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요즈음도 이러한 전통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오는데 병원 영안실에는 한편에서는 슬픔에 젖은 상주가 있고 또 한편에서는 조문객들로 성시를 이룬다. 미국에서 장례 치르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적이 있다. 장례는 전적으로 장의사에게 맡겨지는데 시신도 물론 장의사에게 맡겨져 진행된다. 우리 같이 밤샘을 한다든지 술상을 차려 손님을 대접하고, 화투놀이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촌락에서 행해지던 우리의 풍습은 오늘날 우리의 산업화된 도시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도시화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망자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만나게 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유교에서의 기본정신은 ‘죽은 이를 살아 있는 이 섬기듯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상례부터 제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생각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상례도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꾸미는 일이라고 풀이된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 배고프지 않도록 입에 쌀을 넣어주고, 혹은 노자(路資: 길가는 데 필요한 돈)돈으로 동전을 넣어주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쌀을 망자의 입에 넣을 때 “천 석이요, 이천 석이요” “삼천 석이요”하고 외치는 풍습도 있었다. 시신을 염해서 묻고, 관에 넣을 때는 상주와 상제가 참여해서 곡(哭)을 한다. 죽은 망자에 대한 슬픔의 표현인 곡은 상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입관하고 난 다음에는 아침저녁으로 관 옆에 서서 곡을 하기도 한다. 다음에 상복(喪服)을 입는 절차는 전통적으로 매우 복잡했다. 상복을 오복(五服)이라 해서 다섯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복을 입는 사람들을 오복지친(五服之親)또는 유복자(有服者)라고 한다. 죽은 망자와 얼마나 가깝고 먼 사이인가에 따라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다르고, 상복에 쓰이는 재료와 종류도 다름은 물론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일 경우 둘 다 3년간의 상복을 입지만, 상복의 재료가 다르고, 아랫단을 꿰맨 것과 꿰매지 않은 것으로 구분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 또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는데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 경우에 할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상장(喪杖)을 짚고 1년 동안만 상복을 입는다는 등 가족성원의 구성이 어떠한 경우 어떤 유형으로 상복을 차려 입느냐 하는 것을 매우 복잡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죄인이 된 것과 같다고 유교 전통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마땅히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데 자기의 잘못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 그러한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기간이 길고, 재료가 굵은 삼베로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을 입은 사람은 죄가 가장 크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복의 종류는 가족의 위계서열을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가족에 있어 자기의 위치가 어디쯤 있는가를, 상복을 입게 됨으로써 자각하도록 일깨워 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장례는 각자가 가족의 구성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리고 앞으로 알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사회적으로 공인 받는 의식이기도 한 셈이다. 죽은 자의 신분에 따라 옛날에는 석 달 또는 한달만에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일반 서민은 3일장, 5일장 등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죽은, 망자가 살아서 어떻게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조문객의 문상을 받느냐로 판가름 받기도 한다. 꽃가마 상여는 새로운 세계로 출발한다는 뜻이다. 조상들은 저승으로 갔지만, 이승에 남아있는 자손들은 망자를 3년 동안 조석으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받들어 모신다. 이것은 가족주의 문화전통 속에서 조상이 언제나 자손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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